아버지 집 전세보증금을 낮추기 위해 빚을 갚는데 700만원을 보태드렸다.
부모님께서는 그 700만원이 내가 학자금 대출 받아서 작년 한 해 동안 예금에 묶어둔 돈인줄 알고 계시는데 사실 아니다... 23년 1학기에 학자금대출과 생활비대출로 720만원 가량을 한국장학재단에서 받은 것은 맞다. 장학재단 이율이 고정금리로 1.7%였고 당시 예금이자만 해도 3-4%였기 때문에 대출을 받고 예금에만 묶어두어도 금리차이로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에 대출을 받았었다. 대충 계산해보았을 때 10에서 20만원 가량의 돈이 공짜로 생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어린나이에 700이 넘는 돈이 계좌에 한번에 찍히자 내심 '개인적으로 주식이나 코인투자를 해서 돈을 불리면 예금에 넣어둔 것보다 훨씬 큰 차익을 낼 수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착각이었다. 주식이나 코인에 관심이 많지만 내 그릇에 비해 너무 큰 돈이 들어오자 어느 종목에 투자를 해야할지도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고, 종목을 정할 때까지는 생활비계좌에 넣어둘 계획이었다.
한동안은 720만원은 '내 돈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생활비계좌에 잔액이 720만원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관리했었다. 하지만 하루이틀이 지나면서 시중에 사용할 돈이 떨어지는데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은 많자 720만원이 슬슬 눈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몇 만 원 정도는 사용해도 티도 안 날거야'라는 생각에 배민에서 야식을 시키는데 2만 원, 쿠팡에서 샴푸를 사는데 2만 원, 이런 식으로 대출금을 까먹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살다 보니 몇 십만원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돈을 어디에 썼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후에는 마음에 드는 주식 종목이 생겨서 몇 백만원을 투자했는데 지금은 어떤 종목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알아차릴 새도 없이 대출금 720만원은 내가 원래 투자하고 있던 다른 몇 백만원의 돈과 섞여버렸고, 금리차이로 이른바 '꽁돈'을 벌기 위해 빌렸던 '패시브인컴(불로소득) 자본금'은 하루 아침에 단순한 빚으로 전락해버렸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하루에 과외를 3-4개씩 뛰며 예과 1학년 때까지 1500-2000만원 정도는 저축해 두었었는데, 오늘 아버지에게 700을 보내드리기 위해 주식계좌에서 돈을 빼고 나니 계좌잔액이 고작 650만원 남아있다. 사실 23년 2학기에 추가로 받은 생활비대출 50만원과 카카오뱅크에서 받은 비상금대출 300만원을 제하고 나면 내가 지금 시중에서 쓸 수 있는 돈은 잘 쳐줘야 350만원이다.
이게 말이 되나..? 작년까지만 해도 언제나 가용자금이 1,000만원은 된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고작 350???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내 소비습관에 어떤 문제가 있길래 이렇게 돈이 줄줄 새고 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했던걸까...
부모님께서 대출 받은 돈은 야금야금 사용하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 써버릴 수 있으니까 꼭 예금에 바로 묶으라고 주의하셨었다. 설마 누가 그런 멍청한 짓을 할까 싶었는데 그게 나였다.
비록 10년 뒤에 이 일기를 되돌아보면 700만원은 그렇게 큰 돈이 아니고, 한두 달만 일해도 벌어서 갚을 수 있는 돈일 수 있다. 근데 10년 뒤에 그렇게 되는게 무슨 상관이겠나. 지금 당장 700은 나에게 정말 큰 돈이고, 지금 당장 나를 이렇게 무력하게 만드는데... 앞으로 몇 개월 간 (아니면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열심히 아끼고 저축해서 700을 모아도 난 23년에 대출받은 원금을 겨우 갚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대출은 정말 무서운 제도이다. 잘만 사용하면 나에게 꽁돈을 벌어다 줄 수 있지만, 조금만 방심해도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내 목을 위협한다.
이제라도 바뀌어야 한다. 한동안 안 쓰던 가계부도 3월 1일부터 쓰기로 다짐했었는데 7일인 오늘이 될 때까지 한번도 안 썼다... 오늘은 꼭 쓰겠다. 아니, 앞으로 매일 쓰겠다. 내 경제관념이 제대로 박히고 소비습관이 정상적으로 회복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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